문영주 편집국장/ 창간 12주년에 부쳐

 
어느 새 내 나이 12살이 됐다. 우리 어머니가 애를 낳으려고 하자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다들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나를 ‘배가 아닌 심장에’ 품었고 기어코 애를 낳고 말았다. 주위의 우려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가 알게 된 것은 내가 태어난 훨씬 후의 일이다.

"그 때가 아니라고..."

그렇게 태어난  난 용감했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한 것처럼 난 땅 파는 장비 하나 없으면서 사막에 망루를 짓겠다고 태양이 내려쬐는 사막의 복판을 향해 달려갔다. 사막에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 때면 이대로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온 몸을 엄습했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4년 사막 초입에서 만난 때 아닌 ‘모래 바람’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았다면 난 맨 손으로라도 지금쯤 사막에 망루를 세웠을 것이다. 세상일이란 다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나에겐 남이 갖지 못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모래 바람’이 발목을 잡던 8년 2개월, 난 한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생명줄인 식수보급마저 끊어져 당장 하루를 견디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 목숨이 그렇게 간단히 끊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루를 견디고 이틀을 견디다보니 내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번 싸워보자’는 독기도 생겼다. 당장 먹을 것이 없으니 몸으로 때우면서 버텼다.

그런데도 ‘모래 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불었고 어떡하든 나를 삼켜버리겠다는 기세로 달려왔다. 그러나 그 때마다 난 ‘모래 바람’을 이겼다. 주위의 도움과 허허벌판에 뭔가 만들겠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 아이가 올해로 12살이 됐다.
난 거울을 본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너무 안쓰럽다. 나이보다 훨씬 늙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얼굴에 사막의 ‘모래 바람’이 겹쳐진다. 그리고 회환에 젖는다.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지금 난 지금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내 머릿속을 흔들고 지나간다. 내가 싸웠던 지긋지긋한 ‘모래 바람’은 지난 3월 자취를 감췄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내고 그 자리에서 생명을 다한 모양이다.
나에게도 잠시 평온이 찾아 온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내 체력과 정신이 문제다. 건강한 신체는 건전한 정신을 만든다고 했는데 나이 12살도 안 돼 체력이 바닥났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직까지 끊어진 식수 보급로가 다시 연결된 것도 아니다. 언제 또 다른 ‘모래 바람’이 나를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다. 사막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모래 바람’뿐만이 아니다. 사막은 금세 외로워 질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강한 정신이 없다면 살아나기 힘들다. 이런 강한 정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왜 사막에 서 있는지 생각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정체성과 목적의식이 없이는 이런 극한 상황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왜 사막에 서 있는지..."

난 당초 생각대로 사막에 망루를 짓는 게 꿈이다. 그리고 망루를 통해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드리고 싶다. 자기만 살겠다고 룰을 멋대로 바꾸고 다수를 희생삼아 자신의 욕심을 챙기는 그런 사람들,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들을 고발하고 싶다.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깨고 감언이설로 힘없는 사람들을 능멸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놔두고 정의를 얘기할 수는 없다.
이런 나를 두고 주위에선 아직 ‘모래 바람’을 덜 맞은 모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 철이 안 든 것 같다는 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이 내 운명같이 느껴지는 것을….
난 12살이다. 비록 내 얼굴이 나이에 비해 늙었다고 해도 난 분명 12살이다. 아직은 청춘이다. 청춘은 도전의 시기고 터를 잡는 시기다. 청춘은 삼키는 시간이 아니고 발산하는 시기다. 청춘은 정의를 마음속에 만드는 시간이다. 사막의 ‘모래 바람’과 싸울 때 나에게 도움과 희망을 준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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