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조합장하다보니 몸과 마음 너무 지쳐”
더 좋은 자리라도 그것 이제 내가 바라는 삶 아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 맑다.
직원들이 조합장 일거수일투족을 잘 알고 있다.
조합장까지 했으면 조금 더 부를 축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난해 3월19일, 조동길 대형기저수협 조합장(67)은 15년간 조합장으로 재직해 온 조합을 떠났다. 코모도 호텔에서 가진 그의 퇴임식에는 200여명의 각계 인사들이 자리했다. 부산 지역 기관장은 물론이고 해양수산부 등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상들 리에 화려한 불빛도 그를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지 못했다.
그리고 구랍 24일 부산 남항이 환히 보이는 그의 충무동 사무실. 그가 조합장을 그만 둔지 10개월이 지났지만 그의 전화는 쉬지 않고 그를 찾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좀 쉬고 싶습니다” 그는 연신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차는 공동어시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대형선망수협에 들어서자 조합 직원들이 모두 일어나 목례를 했다. “잘 있습니까?” 성큼 성큼 걸음을 옮기는 그는 분명 부산지역 ‘레전드’였다.

-조합에 자주 옵니까?
“오늘은 대형선망수협에 꼭 와야 할 일이 있어 왔습니다. 대형기저수협에도 수영연맹 회장직을 넘겨주기 위해 한 5분 정도 머물다 간 것이 전부입니다”
-왜 안 가십니까?
“마음이 떠난 것은 아니지만 한 마디로 조심스럽습니다. 빨리 잊으려고 합니다. 10개월 동안 90% 정도는 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가면 직원들이 처세하기가 어려울 것 아니겠습니까?”
-대형기저 조합에서는 ‘전설’ 아닙니까?
“전설은 무슨 전설….  제가 20대에 최연소 선장과 어로장을 했으니까 그 당시로는 대단했습니다. 33살에 세화수산을 설립해 돈도 많이 벌었으니까, 그것은 자랑할 수 있습니다”
-대형기저수협이 제일 어려울 때 조합장으로 취임해 2년 만에 조합을 정상화시키지 않았습니까?“
“제가 조합원들의 추대로 조합장에 취임한 게 2000년 5월14일입니다. 당시 조합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안팎으로 밀어 닥쳤습니다. 대형기저는 수산계의 공적이 돼 있었고 조합 경영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었습니다. 경영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조합장의 차량 매각을 시작으로 기사, 기름, 핸드폰, 그리고 조합장 급료를 삭감했습니다. 조합장 자신의 개혁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조합 개혁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는 “조합이 보유하고 있던 수송선을 매각하고 비업무용 토지 및 임직원들의 사택 매각, 지점 축소에다 수십명의 직원 감원이라는 가슴 아픈 개혁을 단행했다”고 했다.
-조합장은 왜 그만 두셨습니까“
“15년 동안 조합장하다보니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쳤습니다. 넥타이 메고 시간 약속하는 게 너무 지루했습니다. 지도자들이 한국사회에서는 명예롭게 퇴임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번 더 해달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내려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조합장 재직 시 하지 못한 일이 있습니까?
“동경 128도 이동조업 문제는 우리가 일본하고 나온 후속물인데 결과는 주변사람들의 감각 없는 대응과 의지의 부족으로 관철시키지 못했습니다. 하위법령이 상위법을 규제하는 법입니다”
-조합장은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겁니까?
“조합장 자리가 자기 사리사욕 때문에 존재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업무처리를 객관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해야 합니다. 거기에 도덕성까지 갖추면 훌륭하게 조합장 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겁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습니다. 직원들이 조합장 일거수일투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조합장까지 했으면 조금 더 부를 축적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중앙회 소식은 가끔 듣고 있나요?
“가능한 한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성의하다는 얘기를 할진 모르지만 김임권 회장이 부산에서 해양대상을 받는 것도 몰라 뒤 늦게 축하한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너무 열심히 하지마라”고 했다. “내려 올 때 충격이 너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업무에 지쳐 더 좋은 자리에 가더라도 그것은 이제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아까 걸려온 전화가 무슨 전화냐고 물었다. “부산지역 해양수산 관련 대표를 맡아 달라는 얘기인 것 같은 데 돈 1천만~2천만원 내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힘이 들어 사양하고 있다”고 했다. “선망수협을 찾은 것도 그런 문제 때문이냐”고 하자 그냥 웃기만 했다.
우리는 점심을 하기 위해 영도의 한 물회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아침 7시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까 아침도 걸렀지만 얘기는 계속됐다. 그한테 들어야 할 얘기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수산정책을 잘 하고 있습니까?
“ 정책 입안자가 현실을 모르면 오류가 생길 수 있어요. 한중어업협상 때 옵서버로 참석한 적이 있어요. 중국 측이 우리 측 과도수역에 금어기를 제시한 시기가 9월15일부터 10월15일까지 한 달간인데 아무 의무가 없는 시기였어요. 그래서 내가 단 하루를 하더라도 이 기간은 안 된다고 해 바꾼 적이 있어요. 일반 공무원이나 정책을 하는 사람은 알 방법이 없어요. 현장을 모르면 아이디어가 논리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은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미국, EU 수산정책을 인용해 쓰고 있는데 서해바다 사는 고기는 다른 바다와 판이하게 달라요. 학자나 공무원이 말하는 자원은 현장과 차이가 많아요”
그러면서 “자원은 철저하게 환경요인에 좌우된다”며 “특히 회유성 어종은 환경에 가장 민감하다”고 했다. 그는 “사람은 옷을 가지고 온도를 조절하지만 물고기는 회유를 하면서 온도를 조절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동해안 명태자원 양성을 위해 최근 치어를 방류한 것에 대해서도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치어방류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아무리 돈을 많이 넣어도 효과가 없다”고도 했다.
-한중 FTA가 우리 수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중국은 우리와 동일 어종을 잡고 있습니다. 또 채포방법도 비슷합니다. 피해는 클 수밖에 없을 겁니다. 형식적인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됩니다. 실질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점심을 한 후 그의 차는 구덕산 등산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점심 식사 후 1시간 가량 그는 구덕산을 오른다고 했다. 부와 명예의 사다리를 타는 대신 그는 자연의 품을 찾은 것이다. 운동화로 갈아 신고 등산 가방을 어깨에 멘 그의 모습이 기자의 눈에는 낯설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차는  나를 태우고 김해 공항을 향해 달렸다. <문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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