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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특집/현장에서 만난 사람/노량진수산시장 여성 중도매인 81호 문영자씨
노량진수산시장 밥먹은지 30년... "이제 장사 알 것 같아"
2017년 12월 27일 (수) 10:18:10 김은경 ss2911@chol.com
   
 

노량진수산시장 중도매인 문영자 (68. 문주수산 대표)씨의 하루는 남들이 다 잠을 청하는 밤 12시부터 시작된다. 12시 30분에 시장에 도착해서 오전 11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일하고 나면 녹초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대표는 이런 고단한 삶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벌써 노량진시장 밥을 먹은 지 30년. 문영자씨는 이만큼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주위 권유로 시작

그녀가 노량진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7년. 전북 군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서울로 왔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얘기가 회자되던 때다.  바닷가에서 자란 그녀는 수산물이 낯설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남편을 만나면서 그녀와 노량진수산시장 40년 관계는 시작된다. 시작은 소매상인으로 출발했다. 수입 수산물 유통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각종 활어를 팔며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1999년 고비가 찾아왔다. 가게 자리문제로 회사와 명도소송을 하게 된 것이다. 소송을 하는 기간 동안 장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지만 가게 귀퉁이에서 장사를 하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4년 후에야 그녀의 승소로 소송은 끝이 났다. 그때 주위에서 중도매인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해왔다. 중도매인은 산지와 소비자간에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평소 좀 더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일반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그녀는 중도매권 신청을 했고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중도매권을 따냈다. 그게 벌써 16년 전 일이다.

명도소송에서 이기고 중도매권도 따내고 한 차례 고비를 넘기자 이상하리만치 일이 잘 풀렸다. 남자들이 대부분인 시장에서 여성으로서 버텨내기 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쉬운 일은 없다고 말했다. 처음 중도매일을 할 때는 지금보다 여자가 더 없었다. 그래서 ‘여자라서’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덜 자고 더 많이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손님들은 여자라서 더 친근하게 다가왔고, 세밀하게 신경을 써주니 신뢰를 가졌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과감하게 못한다고 했다. 그 부분은 남편이 채워줬고, 때로는 주변에서 도와줬다. 때로는 살벌하고 치열한 경쟁이 있는 시장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임을 깨달았다. 독불장군식으로 살아가는 건 결국 나만 손해 보는 일. 세상은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함께 일하는 직원 중도매권 넘겨줄 계획

중도매인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다. 그래서 문대표는 인연을 중요시여긴다. 이제 곧 나이가 더 많아지면 언젠가는 장사를 못하게 될 것이고, 그때를 대비해 지금 함께 일하는 직원 유광진씨(33)에게 중도매권을 넘겨 줄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중도매권은 가족이외의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지만, 규정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다. 평소 양아들처럼 여기고 있는 유광진씨는 이제 가족이나 다름없다.

일로 받는 스트레스를 풀고 싶지만 밤과 낮이 뒤바뀐 생활 탓에 특별히 하는 활동은 없다.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가족’이다. 문대표는 ‘가족이 내 힘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중도매인은 5년에 한 번씩 뽑는데, 결원이 없으면 뽑지 않아 쉽게 자리가 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중도매인에게는 자릿세를 받지 않고 정부에서 장려금도 나오기 때문에 도전해보라고 조언했다. 밤과 낮이 바뀐 생활을 버틸 수 있고 부지런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요즘 김영란법으로 매출이 예전에 비해 1/3이 줄었지만 경기가 회복되면 그녀는 매장을 더 확장하고 싶다는 포부를 조심스럽게 밝혔다. 이제 100세 시대, 현재 68세인 그 녀에게는 앞으로 살날이 더 많기 때문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그러나 작년 신시장이 만들어지고 신ㆍ구시장 갈등이 생기면서 회의가 드는 게 사실이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상인들이 하루아침에 갈라지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시장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처음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제가 뭐라 얘기하겠습니까? 그 분(구시장 상인)들 나름대로 애로가 있지 않겠습니까? 빨리 협상을 끝내 시장을 정상화 시켜야 합니다. 시장 이전 전보다 매출이 줄면 상인들이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구시장 일부 상인들이 구시장을 리모델링 하겠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며 “할 수만 있으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구시장 비대위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냐”고 묻자 “그 중 드센 사람이 있어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서로 양보하고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구시장 상인들이 많이 보고 싶다”고도 했다.  

겨울이면 볼이 얼얼할 정도로 매섭게 불어오는 한강 칼바람 속에서 같이 생활했던 동료애가 말 속에 숨어 있는 것 같다.  

그 녀는 새해소망에 대해서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한 해를 보냈으면 한다”고 했다. 밤 12시, 남들이 자는 한 밤중에 나와 그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일을 해야 하는 그녀에게 건강은 빼 놓을 수 없는 자산이다. 40년 가까이 일을 하다 보니 이제 몸이 옛날 같지가 않다. 신 시장이 지어지면서 구시장 때처럼 칼바람은 피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몸이 잘 따라 오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얼굴을 보면 아직도 한참인 나이같다”고 하자 “그렇지 않지만 어쨌든 고맙다”고 했다. 살벌한 시장에서 오랜 동안 생활한 사람답지 않게 소녀 같은 수줍음이 얼굴에 번진다.  

오전 12시, 이 시간이면 몸이 천근같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40년이 돼서야 장사의 재미를 알겠다는 81번 중도매인 문영자씨. 그는 무술년 새해를 앞두고 이렇게 매일 서울의 새벽을 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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