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댕이 소갈딱지
속 좁은 사람을 흉보는 말


밴댕이라는 생선에 대한 기억은 주로 속담으로 남아 있다. 속 좁은 사람을 흉보는 ‘밴댕이 소갈딱지’, 변변치 못한 사람이 때를 잘 만났을 때를 빗대어 말하는 ‘오뉴월 밴댕이’ 등이다.
 
속담 속 밴댕이는 이렇게 썩 아름답지 못하다. 실제로도 밴댕이는 작고 볼품없는 생선이다. 그러나 5~6월 제철만큼은 맛있다. 밴댕이회도 좋고 양배추, 깻잎과 함께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밴댕이 회무침도 별미인데 기름기 자르르 흐르는 밴댕이구이는 고급 생선구이 부럽지 않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제는 밴댕이가 귀하신 몸이라는 것이다. 값이 비싸지 않음에도 제철에 맞춰 일부러 전문 음식점을 찾지 않으면 맛보기 쉽지 않다. 별도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밴댕이로 유명한 인천과 강화를 비롯해 서해안 바닷가까지 가거나 인터넷과 지인에게 물어 맛집을 찾아야 한다.
 
이런 수고도 힘들다면 옛사람들이 남긴 기록에서 밴댕이 맛을 반추하며 입맛을 다시는 것도 방법이다. 약 400년 전인 광해군 때의 시인 이응희가 밴댕이 맛에 반해 시 한 수를 남겼다.

계절이 단오절에 이르니 / 어선이 바닷가에 가득하다 / 밴댕이가 어시장에 잔뜩 나오니 / 은빛 모습이 마을을 뒤덮었다 / 상추쌈에 싸 먹으면 맛이 으뜸이고 / 보리밥에 먹어도 맛이 달다 / 시골 농가에 이것이 없으면 / 생선 맛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구수한 보리밥에다 상추쌈 싸서 먹는 밴댕이구이는 상상만 해도 침이 넘어간다.
 
효자로 이름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전쟁 와중에 고향의 어머님께 챙겨 보낸 생선에도 밴댕이가 포함돼 있다. ‘난중일기’에는 고향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머니 안부를 몰라 답답하다며 소식을 물으러 보내는 인편에 전복과 밴댕이 그리고 어란 몇 점을 어머니께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광해군 때 유몽인은 ‘어우야담’에서 밴댕이가 얼마나 맛있는지 자세히 썼다.
 
김인복이라는 말솜씨 좋은 사람이 있었다. 젊었을 때 길에서 수정 갓끈을 한 시골 선비를 만났는데 갓끈이 너무 짧아 턱밑에 겨우 걸쳤다. 김인복이 수정 갓끈이 너무 멋있다며 한바탕 칭찬을 하고는 재산을 털어서라도 그 갓끈을 사고 싶으니 다음 날 남대문 밖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라고 당부했다. 이튿날 시골 선비가 집을 찾아오자 김인복이 밴댕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천 안산 앞바다에서 그물로 잡은 밴댕이가 시장에 나오면 그 놈을 사다 기름간장을 바른 후 석쇠에 구우면 냄새가 코끝에 진동하지요. 그러면 상추 잎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기름이 잘잘 흐르는 햅쌀밥 한 숟갈을 듬뿍 떠서 달고 고소한 된장을 얹은 위에다 노릿하게 구워진 밴댕이를 올려놓고 부산포의 일본 상품 쌈 싸듯 쌈을 싼단 말이오. 그러고는 장사꾼 짐 들어올리듯 두 손으로 들어 올린 후 종루에서 북소리 들리면 남대문 열리듯 입을 떡 벌리고 밀어 넣는데….”
 
이때 시골 선비도 따라서 입을 벌리다 짧은 갓끈이 그만 뚝 끊어져 수정 알이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이야기의 골자는 겉멋이나 부리고 돌아다니는 시골 선비를 골탕 먹였다는 것이지만,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밴댕이구이가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맛있었음을 더불어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밴댕이는 특별 관리 대상이었던 생선이다. 지금은 역시 서해안에서 맛볼 수 있는 한강변의 웅어(우어)와 함께 경기도 안산에 밴댕이를 관리하는 관청인 소어소(蘇魚所)까지 설치됐다. 오뉴월 밴댕이 철이 되면 궁중의 음식재료 공급을 담당했던 사옹원에서 특별히 얼음으로 밴댕이를 재 신선도를 유지했다. 정조는 수시로 규장각 학자와 어영청 군관에게 밴댕이와 웅어로 상을 내렸으니, 이처럼 밴댕이는 왕의 총애도 한 몸에 받았다.
 
오뉴월 밴댕이 철이다. 미식가가 아니어도 한 번쯤은 서해 바다를 찾아 제철 밴댕이를 맛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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