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출마자 왜 회장이 되려는 지 분명한 자기 대답 있어야”
“회장 자리, 섬기며 봉사하는 자리…영화 누리는 자리 아니다”

 
가장 아쉬웠던 것 “인사 실패…수협 조직과 사람 개개인을 몰랐다”
“열 걸음 갈 수 있었는데… “인사실패 반드시 바로 잡아 놓고 가겠다”
“나간 직원들이 고발하고 문제 제기하는 퇴행적 행위 이제 청산돼야”

김임권 수협중앙회장은 지난 24일 인터뷰를 요청하자 손사래를 쳤다. 지금 “이런 마당에 인터뷰를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냥 차나 마시고 얘기를 하자며 겨우 약속을 했다. 가까스로 마련한 자리였지만 그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문제가 된 회장 사택 얘기가 나오자 “모든 게 내 불찰이고 업보”라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회사 사택을 안 쓰고 개인주택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입니다. 임대차 계약을 하고 5개월 동안 그 집을 임차했는데 전에 살던 집보다 1,000만원 정도 비용이 더 들어갔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돈 1,000만원 때문에 그런 짓을 하며 살지는 않았습니다”
다소 억울한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임차 비용이 늘어난 것은 판단 미스”라며 “내 수준만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사 가는 데만 신경 쓰고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며 ‘업보’라고 했다.
김 회장은 본래 통이 큰 사람이다. 부산상고 총동창회장. (사)아·태수산물류무역협회 회장, 기독교방송 운영이사장 등 후원이나 기부가 필요한 곳이면 그는 빠짐없이 참여했다. 그를 필요로 하는 곳엔 거침없이 손을 내밀었다. 어떤 곳에는 억대 가까운 돈도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김 회장에게 사택 문제는 자존심에 문제고 여태까지 쌓아온 명성의 문제였다. 그는 “처음엔 창피해서 교회도 못 갔다”고 했다. “비가 오는 날 혼자 산에 가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기도 했다”고도 했다. 언론에 처음 보도 됐을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그의 시선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가 다시 입을 연 것은 “수협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질문이 있고난 뒤였다. 그는 “지금 수협은 격변기”라며 “당장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고 했다.
“노량진수산시장 사태를 비롯해 바다모래 채취, 해양쓰레기 청소, 남북한 어업협력, 해외어장 개척, 수협법 개정 등 지금 수협의 존재와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남북한 어업협력 등 이 모든 문제들은 수협이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참여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는 해외어장 개척도 오는 8월 경 시험조업이 끝나면 10월 말이면 현장 조업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취임 후 심혈을 기울인 일들이 그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모양이다. 그는 역대 수협회장 중 중량급 무게를 가진 회장이다. 돈도 있고 외부 네트워크도 넓고 탄탄하다. 정·관계 인맥도 적지 않다. 또 정열적이고 활동적이다. 많은 조합장들은 “그가 이런 문제로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수협 위상이 더 높아 졌을 것”이라며 “격변기 수협을 이끌 수 있는 유능한 인물인데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회장 연임 문제에 대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더 이상 여기에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다만 “단임제는 옳은 제도가 아니다”며 “다음 회장부터는 연임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회장이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해양수산부와 수협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배와 피지배자와의 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라고 규정했다. 지난번 특별 감사 시 해양수산부 고위 감사 관계자의 무례한 한 발언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감사 결과 문제가 있다면 문제가 있는 대로 처분하면 되지 회장 지위까지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해양수산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고도 했다. 이것은 조합장들 생각도 마찬가지다. 호남권 한 조합장은 “이런 문제로 해양수산부가 자기 식구를 이렇게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게 맞느냐”며 “수협은 누구를 믿고 일 하느냐”고 했다. 경남지역 한 조합장은 “해양수산부는 일만 생기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는 부처냐”고 꼬집었다. 어떤 조합장은 “농식품부가 농협을 감사하는 데도 이러느냐”고도 했다.
김 회장 임기는 내년 3월 25일까지다. 그러니까 9개월가량 남았다. 그러나 차기회장 선거는 이미 시작됐다. 출마를 저울질하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점차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그는 “어떤 사람이 회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회장에 출마하려는 사람은 왜 내가 회장이 되겠다고 하는지, 하필이면 왜 내가 돼야 하는지 분명한 자기 대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일을 하다보면 흔들리는 데 이런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사람이 회장이 된다면 회장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사람이 회장이 될 경우 자신의 불행은 물론 수협의, 어업인의 불행이 될 수 있습니다”
민감한 질문이었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로 차분했다. 그는 “회장 자리는 영화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며 ”섬기는 자리며 봉사하는 자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회장 선거에서는 표가 있는 것처럼 후보자들에게 접근하면서 후보자와 조합장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회장 선거 때마다 표가 있다며 후보자에게 접근하는 전직 수협 임원과 사이비 기자 얘기를 염두에 둔 것 같다. 심지어 과거에는 회장 선거 때 억대가 오갔다는 얘기도 들리곤 했던 게 사실이다. 그는 “조합장들 표를 왜곡시키고 선거판을 혼탁하게 만드는 이런 풍토는 더 이상 발 붙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회장 당선 후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얘기를 했다.
“수협 주변에 있는 전직 회장, 임원, 직원들이 수협에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또 무엇이 수협 발전에 유익한 것인지, 사려 깊은 행동을 해야 합니다. 수협이 부족한 게 많지만 수협은 대한민국 수산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조직입니다. 정말 귀한 조직입니다”
그의 말 속에는 에둘러 뭔가 표현하고 싶은 ‘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차를 한잔 하자는 게 시간이 길어지자 그는 점심 약속을 한 사람에게 조금 늦겠다고 연락을 하도록 했다. 할 말이 조금 남은 듯 했다.
서둘러 회장 재임 시 가장 아쉬웠던 게 뭐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 하지 않고 “인사 실패”라고 했다. “수협 조직과 사람 개개인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열 걸음은 갈 수 있는데 인사 실패 때문에 다섯 걸음뿐이 못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사실패는 반드시 바로 잡아 놓고 가겠다”고 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섬뜩할 만큼 결기가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나간 직원이 남아 있는 사람을 고발하고 문제 제기하는 퇴행적 행위는 이제 청산돼야 한다”며 “이건 협동조합 본연에도 맞지 않다”고 했다.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그는 “경찰서에 불려 다니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줘서 고맙다”며 서둘러 회장실을 빠져 나갔다. “바다를 보기 위해 산을 간다”는 애틋한 바다 사랑 얘기가 실린 김 회장 인터뷰 액자가 주인이 나간 방을 지키고 있다. <문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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