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사람마다 머리부터 물어요”
주 평균 2-3회 피지정부나 타국 외교단 외교행사 참석
“첫 여성과장, 여성국장 등 ‘첫’자 솔직히 부담스러워요”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감추고 싶은 게 있다. 그 중 하나가 흰 머리다. 자신의 늙음을 보이기 싫어서다. 그러나 조신희(54. 전 해양수산부 국제원양정책관) 피지 대사는 1년 전부터 흰 머리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가 왜 속살을 보였는지 자세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그의 표정 속엔 어딘지 모르게 여유와 자신감이 배어있다.
 
지난 12월 10일 공관장 회의 차 귀국한 조 대사의 머리는 풍화작용을 거쳐 자연과 체화된 바위 같았다. 잠수교강바람에 흩날리는 그의 희고 검은 머리에선 연륜과 낭만이 묻어났다. 강경화 외교통상부장관처럼 자연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 머리가…”라며 그의 흰 머리를 먼저 얘기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외무 고시 출신이 아닌 행시 출신이 외국대사로 나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그것도 여성으로 한정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가 해양수산부 첫 여성 과장, 국장을 거쳐 선망의 대상인  외국대사로 나간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그의 피지 대사 1년이 궁금했다. 그는 한강변을 걸으면서 말했다. “1년이 훌쩍 갔어요”
 
-대사로 간 지 벌써 일년이 된 것 같다. 이제 대사 생활에 익숙해 졌는가.
“업무적으로는 그간 국제 업무를 해왔고 주중대사관 근무 경험 등이 바탕이 돼 크게 어려움은 없다. 잘 적응하고 있다”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없는 가.  
“피지는 남자들도 치마를 입는다. 일년 내 반팔로 견딜 수 있는 열대 기후, 낙천적이고 흥이 많은 피지인 등 한국과는 문화 차이가 크다.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문화체험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대사의 일은 주로 어떤 일인가.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는 가. 
“주중에는 기본적으로 8시 반에서 4시 반까지 대사관에서 근무한다. 일주일에 평균 2-3회는 근무시간 또는 저녁시간에 피지정부나 피지주재 타국 외교단의 공식행사 등 외교행사에 참석한다. 월 3-4회 정도는 우리 대사관 관저에서 우리 국민이나 피지정부사람, 타국 외교단을 대상으로 오찬이나 만찬행사를 개최한다”
 
-5개국 겸임대사를 하고 있는데 어려움은 없는 가.
“남태평양 내 나우루, 투발루, 키리바시, 마샬아일랜드, 마이크로네시아 등 5개국이 내가 맡고 있는 영역이다. 이 지역은 교통수단 부족으로 이동하는데 시간과 경비가 너무 많이 소요된다. 이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예를 들어 피지에서 마이크로네시아를 가려면 일주일에 한번 운항하는 비행기(경유지가 4곳)를 이용하던지, 아니면 피지-인천-괌을 경유해서 가야 한다. 매번 겸임국을 갈 때 마다 교통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나야 어쩌다 한번 이동하지만 이 지역에 거주하고 계신 분들은 교통편 부족으로  자유롭게 이동을 하기 어렵다.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선진국들의 관심과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해양수산 쪽에도 업무가 많은가. 
“피지 및 겸임국 등에서 해양수산분야에 대한 지원요청이 많은 편이다. 항만이나 어항 개발 및 정비사업, 해도작성 등 해양조사사업, 수산 양식시설 투자, 해수온도차 발전시설, 비행기와 선박의 결합형인 윙쉽 등 수요가 많은 편이다” 
 
-앞으로 해양수산과 관련 어떤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가.
“현재 해수부에서  무상원조사업으로 피지에 증여할 해양조사선박을 건조 중에 있다. 한-피지 간 수산양식협력 양해각서 체결도 추진 중에 있다. 키리바시에는 해수온도차 발전시설을 지원할 예정이다. 피지 및 투발루정부의 요청으로 어항개발사업 타당성조사 및 해안침식방지사업 연구용역사업을 수행하기도 했다. 할 일이 적지 않다”
 
-재임 중 꼭 하고 싶은 것은 뭔가. 
“재임기간 중 가능하면 피지 및 겸임국들과 해양수산관련 기본 협력틀을 만들어놓고 싶다. 특히 우리나라의 선진 기술을 전수하는 인적 역량개발사업에 중점을 두고 인적 교류를 활성화해 양국 상호간의 이해와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
 
-그 쪽 현안은 뭔가.
“올해 우리 대사관의 가장 큰 현안은 해양수산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국내에서 이단종교집단으로 알려진 은혜로교회 내 범법행위자들을 국내로 송환하는 문제였다. 피지에는 약 400명의 은혜로신도들이 2013년부터 투자이민형식으로 와서 집단거주하고 있다. 그간 13명이 탈출해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탈출한 사람들이 피지 거주지 내부에서 집단구타 등 인권유린행위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국 경찰에 신고했다. 이를 근거로 한국 경찰이 조사해 법원으로부터 11명의 피의자에 대한 체포영장을 받았다. 이중 4명은 체포해서 재판중이고, 7명은 피지에 거주 중이어서 이들을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피지정부에 협조를 요청해 왔다. 그런데 피지정부는 범죄행위가 피지에서 발생한 만큼 피지법에 따라 수사하고 처벌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아직까지 피의자들을 송환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이 원만히 해결되도록 피지정부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1년 대사 기간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게 있는가. 
“금년 7월 피지에서 한국대사배 태권도대회를 개최했다. 유치원생부터 군인팀, 경찰팀까지 약 200여명의 현지인들이 참가를 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말로만 들었던 외국에서의 태권도 인기를 실감했다. 유치원생들이 메달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또 7월에는 겸임국인 투발루에서 수교 40주년 기념행사, 10월에는 나우루에서 50주년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한국 공연단의 공연이 있었다. 현지인들의 열띤 반응과 흥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절로 났다”
 
-대사 직 수행이 해양수산부 업무 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가.
“대사라는 직위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 국가의 대표로서 최일선에서 우리 국익을 대변하고 때로는 양국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또 피지국민들에게는 한국문화 전도사이자 홍보자 역할을 해야 하고 우리 국민들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 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이것 말고도 대사관의 수장으로서 조직의 전반적인 관리와 책임을 지는 등 역할이 다양하다. 해수부에 복귀할 경우 이런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가 대사로 있으면서 해양수산부 소식을 어떻게 듣고 있는지 궁금했다. 
“해양수산부 소식은 어떤 방법으로 듣고 있느냐”고 묻자 “해양수산부 직원들을 통해서 듣거나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마음이 항상 해양수산부에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첫 여성과장, 첫 여성국장, 해양수산부 출신 첫 대사 등 가 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데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엔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면서 살아온 지 25년이 되어간다. 여전히 ‘첫’ 자는 부담스럽다. 사람들이 보고 배운다는 말을 많이 한다. 누군가를 따라서 하면 훨씬 수월하고 실패확률도 줄어들 텐데 그 누군가가 항상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다”고도 했다. 그러면서“항상 좋은 모습,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드러내지 못하는 고통도 적지 않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조 대사를 보며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여성 후배들에게 업무와 관련해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들려 달라.
“기본적으로 자기가 맡은 업무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결과까지 좋으면 금상첨화다. 물론 결혼한 경우 직장과 가정에서 다 잘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주위로부터 제대로 평가를 받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자기 발전을 위해 뭔가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기를 권한다”며 “주어진 일만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발전을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달성하는 과정을 즐기시라”고 했다. “꿈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이고, 꿈을 꾸다 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날이 올 것”이라고도 했다. 
 
-대사직에 있을 때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뭔가.
“현재 피지 대사관이나 관저는 좁고 낡아서 대대적인 수선이 필요한 상황인데 모두 임대건물이라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사관 건물의 경우에는 주차시설이 좁아서 우리 교민들의 불편이 매우 크다. 대사관이나 관저도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 맞는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재임 중 건축 부지를 매입해서 대사관과 관저를 건축하는 국유화사업을 추진하고 싶다. 물론 국유화사업을 하려면 예산확보에서 부터 건축 마무리까지 최소 5-6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내 재임 기간 중에 사업 마무리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작만 해놓으면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생각한다”
 
끝으로 “해양수산부 선배 동료 후배들에게 새해 덕담을 한번 해달라”고 하자 “최근 공무원들의 과로문제가 뉴스에 간간이 나오는 것을 봤다”며 “우리 해수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건강을 최우선으로 잘 챙기시고, 최근 정부기조도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강조하는 만큼 가족들과 좋은 추억 많이 쌓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일부 원양어선의 불법 조업을 막기 위해 원양산업발전법을 개정하면서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한 처벌조항을 만들기도 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인 조 대사는 27일 다시 피지로 돌아갔다. 바람에 흩날리는 희고 까만 머리를 다른 사람 기억에 남기면서…. <문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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