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임권 수협회장 4년 명암/취임 때 사자후 같은 모습 중반 풍랑 만나 동력 잃기도
바다, 어업인 사랑 그를 따를 사람 없을 듯...“인사 패착이 연임 등 모든 것 잃게 했다”

 
김임권 수협회장은 그렇게 왔다.

2015년 3월25일.  취임식장에 들어서는 그의 모습은 거침이 없었다. 김 회장 두어명 쯤 뒤에는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이 뒤를 따랐다. 마치 장관을 거느리고 오는 회장 같았다. 역대 어느 회장 취임식 때보다 내빈 들 중량이 무거웠다. 그의 기운은 하늘을 집어삼킬 듯 했다. 그가 뿜어내는 사자후에 보는 사람들은 잠시 숨을 멈추기도 했다.그는 그렇게 왔다.

그러나 4년이 지난 3월, 그는 어떻게 변했을 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뼈대만 앙상한 고기를 매달고 항구에 되돌아 왔을까.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족적을 남겼을까. 이제 그는 법정에 선 피고처럼 냉정한 평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됐다.

김임권 회장의 출발은 좋았다. 다른 회장 같으면 회장 실습 기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연습이 필요 없었다. 수산계는 부산수대 인맥이 그를 받쳐 줬다. 정 ·재계에 그렇게 많은 인적네트워크를 가진 회장이 없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백령도를 시작으로 어업인을 찾는 일도 시작했다. 회장 얘기는 힘이 있었고 그에게 얘기하면 모든 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어업인들이 많았다.

현실은 냉혹...인사 패착 겹쳐

그는 노량진수산시장에 복합리조트 승인을 받기 위해 매진했다. 세월호 항로에 수협이 주주가 돼 여객선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미더스 손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팽배했다. 국회에서의 답변도 시원시원했다. 수협이라고 함부로 깔보던 의원들도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을 냉혹했다. 복합리조트 사업은 그에게 첫 번째 좌절을 안겨줬다. 백방으로 뛰었지만 그의 힘이 미치지 못했다. 세월호 항로에 여객선 투입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의 기업가적인 생각과 수협 직원과의 사고는 간극이 컸다.

그가 가장 실패한 것은 인사다. 그의 인사 패착이 처음 드러난 게 수협유통 사장 인사다. 그는 수협유통의 검은 고리를 끊기 위해 깨끗하게 보였던 강학순 조합장을 사장으로 앉혔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고양 덕이점 바다마트도 강 사장이 재임 때 한 일이다. 가장 기업가적인 생각을 가진 김 회장이 반기업적 인사를 한 것이다.

김 회장 재임 때 수협유통의 적자가 80억원 가량 된다. 김 회장 전 적자가 많아야 10억 미만이라고 봤을 때 엄청난 손해다. 물론 거기에는 수협 지도경제 대표나 임원 등의 책임이 훨씬 크다. 중간에서 자기들이 걸러야 할 것을 하나도 거르지 않고 방치해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직무유기는 회장이 아니라 법적으로 지휘 계통에 있는 사람들 몫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이제 와서 회장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은 누워서 침 뱉는 격이다. 그런데도 벌써 수협 내부에서 그런 얘기들이 나온다.

회장의 두 번째 패착은 일관성이다. 그는 쉽게 말하고 쉽게 잊어먹는다. 지도자로서는 가장 나쁜 덕목 중 하나가 실언이다. 업무보다 평가가 낮게 나올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다. 그가 일관성을 가진 것은 인사다. 자기가 그린 구도를 상당 시간 이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감사위원장 교체 사고가 터졌다. 때가 늦었지만 대형사고로 번졌다. 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실상 급격한 레임덕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 뒤 그의 행보는 탄력을 잃는다. 지도자가 도덕적인 부분에 상처를 입는다면 지도력이 얼마나 훼손되는 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바다 어업인을 진정으로 사랑한 '뱃 사람'

그러나 그는 수협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어업인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의 말대로 3대가 어업인이었고 산에 올라가는 것도 바다를 보기위해 간다는 사람이다. 바다모래 채취 반대사건은 수협이 뭐 하는 곳인가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굳이 정체성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이제 사람들은 수협이 뭐 하는 곳인가를 알게 했다.

그의 말대로 그의 치적 중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수협은행을 독립시키는 사업구조 개편이다. 그는 그것 때문에 사실은 연임을 잃었다. 그가 사업구조 개편에 목을 매달지 않았으면 그의 연임은 그의 임기 중반 쯤 끝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또 하나 그를 돋보이게 한 것은 무슨 일이든 자기 돈을 쓴다. 돈에는 깨끗한 사람이다. 교회나 사회 기부단체에 돈을 기부하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고 수협 임직원들과 식사 때도 자기가 밥값을 낸다. 어려운 사람이면 보이지 않게 그들에게 성금을 전달하고 그 들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가까운 사람 중 그 한테  신세를 안 진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게다가 그는 인간적이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노래가사처럼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수산계 공인으로서 가장 칭찬 받아야 할 것은 바다와 어업인 사랑이다. 그는 정말 바다를 사랑했다. 뼈 속까지 뱃사람이다. 그는 2015년 회장 취임사 첫마디에 “제게 있어 바다는 태생부터 떠날 수 없는 운명이며 인생이었다”고 회고했다. “풍요와 고난을 동시에 안겨주는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지켰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이웃들의 녹록치 않은 삶을 지켜보며 자랐다”고도 했다.

그는 이제 항해를 끝내고 배를 항구에 매달아 놓으면서 지나온 여정을 돌아보고 있다. “어업인의 행복과 대한민국 수산의 성장을 위해 ‘강한 수협, 돈 되는 수산’을 목표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그의 얘기가 산산이 부서지는 항구에서 말이다. <문영주>
 

저작권자 © 수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