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 존재 목적은 어업인 생산활동 지원…기본 명심해야"
어업인 잡아온 고기 제값 받게 해야...시장은 그런 일 하기 위해 있는 것
“미완의 장소로 놔 놓고 와 항상 아쉬움”

김홍철 전수협중앙회 지도경제 대표

 수협이 노량진수산시장을 인수해 운영하기까지는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1년 시장 인수 결정 과정에서는 야당(한나라당)의 일부 농림해양수산위 의원들의 회유와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또 인수를 결정한 후에는 자금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외환 위기 속 1조1,581억원이라는 거액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수협이 자금 조달 등 운신의 폭을 키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장 현대화를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라는 또 하나의 엄청난 산을 넘어야 했다. 이런 험난한 과정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이 바로 김홍철(67)前수협중앙회 지도경제 대표다.

 2001년 인수결정과정에서는 수협중앙회 경제기획부장으로, 자금 확보 시에는 담당 이사로, 시장 현대화 정부 보조 과정에서는 지도경제대표로 있으면서 그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1,500억원 가량되는 땅을 인수하기 위해 경제사업 시 남은 운영자금 14억원으로 계약을 하고 잔금 납부기간에 시중은행(우리은행)에 가서 거액의 대출을 받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협은행(신용부문)이 공적자금을 받아 지도경제에 대출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낡은 시장을 현대화하기 위해서는 수협의 자체 능력만으로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WTO 체제, 수산물 유통시장 개방은 오히려 그에게 호재가 됐다. 그는 시장 개방에 대비하고 소비자의 새로운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시장 현대화가 절실하다며 예산당국을 집요하게 설득했다. 그러고 기적같은 일을 만들어 냈다.

그는 “정부 보조금을 지원할 수 없는 WTO 체제 아래서 정부가 어민들을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거리로 내 모는 것은 어민들의 삶을 피폐 시키겠다는 거나 다를바 없다”며 “어민들이 자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터전은 마련해 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식을 독립시키려면 사과 궤짝(상자) 하나라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부에 시장지원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결국 그의 설득은 주효했고 정부는 시장 현대화를 위해 무려 1,540여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2007년의 일이다.

이후 수협 내에서는 노량진수산시장에 그의 동상이라도 세워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수협중앙회는 2012년 현대화 시장 공사를 시작하면서도, 또 현대화 시장 건설 이후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행사에서도 그를 초대 인사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김 전 대표는 지난 3일 수협중앙회가 동작구청과 구시장 부지를 체육시설로 4년간 활용토록 위탁한다는 업무협약을 맺은 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질거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다”며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본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노량진시장 1만5천평은 엄청 난 활용가치 있는 땅
“내가 그 땅 갖고 있다면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김홍철 대표는 17일 그가 운영하는 대전 유성구에 있는 레전드호텔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3시간 넘게 그 동안 가슴 속에 묻어뒀던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노량진수산시장은 수협인의 자존심 뿐만 아니라 모든 어업인과 수산인들의 자산이고 가치가 돼야 한다”며 “수산업이 왜 필요한 지를, 정부가 어업인들을 왜 지원해야 하는지 이유를 몸소 느끼게 해주는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시장 얘기가 나오면서 그의 눈빛은 살아나고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노량진수산시장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을 것 같다. 시장 인수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것 아니냐.
“농림해양수산위 야당의원들의 반발이 심했다. 공적자금을 받은 수협이 1,500여억원이나 되는 시장을 인수하는 게 잘못됐다는 논리였다. 검찰이 일부 야당의원들이 노량진시장 입찰과정에서 수협 등에 대해 포기압력을 가했는지, 또 수협에 대한 국정감사 일정이 변경된 경위 등을 조사까지 했으니 당시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수협은 결국 인수를 결정했다”

-그런데도 왜 인수가 결정됐나.
“당시 시장은 상자떼기로 유통되는 벌크가 대부분이었다. 원어 상태로 유통됐고 가공해 소분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시장 개방과 소비 패턴 변화로 새로운 형태의 시장이 필요했지만 시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런 상황인 만큼 수협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판매 기지화가 필요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제1생산기지, 감천항은 가공기지, 노량진수산시장은 판매기지화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유통시장이 개방되고 소비자 니즈가 바뀌는 데도 판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외국 자본에 시장이 잠식될 우려가 많았다”
그는 “수협은 어민들이 잡아 온 수산물이 제값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0~40%는 팔아줄 수 있는 시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노량진수산시장은 바로 이런 욕구를 충족시킬 시장이었다”고 했다. 또 “시장 개방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때가 적기였다”고 했다.

-인수를 결정했더라도 부지 대금 확보가 쉽지 않았을텐데….
“수협은행(신용부문)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공적자금을 받아 내부거래가 안 되도록 방화벽이 쳐져 있었다. 남아 있는 경제 쪽 운영자금 14억원이 전부였다. 그 돈을  몽탕 계약금으로 주고 나머지는 우리은행 대출을 받아 충당했다. 다행히 우리은행에서 큰 돈인데도 과감한 결정을 해 어려움을 돌파했다”

-문제는 시장 현대화 자금 아닌가. 땅이야 담보를 받을 수도 있지만 시장 현대화자금은 담보로 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도 김 대표가 정부로부터 1,540억원이란 시설 현대화자금을 융자도 아니고, 보조로 지원받은 것은 김 대표 재임 중 백미 아닌가.
“WTO 체제에 따른 시장 개방으로 정부 보조가 줄거나 없어지는 상황에서 아무런 방어 능력도 없는 어업인과 수산업이 기댈 데가 없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수산업을 없애고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지 않으려면 뭔가 어업인과 수산업을 지원해야 한다. 또 지금 시장이 변하고 있다. 소비자의 새로운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외국의 대형유통업체가 시장을 장악할 수밖에 없다. 이런 논리로 해양수산부와 예산 당국을 설득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줬고 결국 그들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2007년부터 시장 현대화 자금이 들어 온것이다. 수협은 어업인들이 잡아 온 수산물을 제 값을 받고 팔게 해줘야 한다. 수산물을 잡아 왔는데 팔데가 없다거나 가격지지가 안 된다면 어업인들은 설 자리가 없다. 수협이 왜 있는지, 시장이 왜 있는지 항상 수협인들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누가 이런 큰 돈을 받아 올 수 있겠는가. 지도대표이사들이 정부로부터 10~20억원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게 현실 아닌가. 전무후무한 일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생각으로 후회없이 일했다. 내가 지금까지 수협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수협 전·현직 임직원 일부는 “아직도 김홍철 대표가 2년만 더 대표를 했다면 이 시장은 수산물 유통의 메카 뿐만 아니라 서울의 명소, 아시아의 명소가 돼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아직도 구시장 상인 일부와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데 지금 현대화시장은 어떤 가.
“시멘트 덩어리만 지어 놨다고 현대화가 아니다. 건물을 새로 지었다고 현대화라고 말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현대화는 수산물 유통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고 소비자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수산물을 사고 팔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공급자는 소비자가 필요한 상품을 위생적으로 안전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친소비자적인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시장은 공급자도 소비자도 위한 시장이 아니다. 당초 구상대로 했다면 지금처럼 나대지로 인한 토지보유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2004년 지도경제대표가 되자마자 시장 그림을 그리기 위해 김성진해양수산부장관을 비롯해 10여명의 관련 인사들과 수변을 이용한 관광지로 유명한 일본 오다이바를 둘러보고 300년전 지어진 독일 함부르크 시장을 방문, 시장 운영방법 등을 보고 왔다. 그 후 그는 “동양 최대의 시장을 만들어 보고 싶어 설계 사무소에 나의 구상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2008년 이 시장을 미완의 시장으로 남겨 놓고 떠났다. 

-김 대표가 있을 땐 이 시장을 어떻게 만들어 보려고 했는가.
“부산공동어시장을 1차 생산기지, 감천항을 2차 가공기지, 노량진수산시장을 3차 판매기지화하려고 했다. 이들을 계열화 해야 어업인들이 마음 놓고 고기를 잡고 대형유통업체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가격 지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기 위해 노량진수산시장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소비자를 위한 최적화된 시장으로 설계를 구상했다. 벌크(상자떼기)는 지하에, 가공품은 1층, 식당은 2층, 이것을 신시장과 구시장 건물과 통합해 운영하면 그야 말로 장관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머지 위층은 각종 해양수산 기관 및 단체가 들어와 우리나라 해양수산메카가 되도록, 그래서 연대와 정보가 공유되는 그런 공간을 구상했었다. 지금처럼 신시장 가장 좋은 자리인 3, 4층에 주차장이 떡 버티고 있는 이런 형태는 아니었다”

-수협중앙회가 구시장 부지를 앞으로 4년 간 동작구에 체육시설로 쓰도록 하겠다는 업무협약에 대해 말들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 가.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수협이 의지도 없고,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안 되면 두들기고 뚫고 가야 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것 아닌가. 내가 그 당시 어렵다고 정부를 설득하지 않았다면 여기에 현대화 시장이 지어졌겠는가”

-이 터에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하는 게 좋은가.
"지금은 코로나 시대다. 숨 막히게 꽉 막힌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섞여 음식을 먹는 게 부담스런 시대다. 이런 때 1만5천평은 축복받은 땅이 될 수 있다. 이 넓은 공간에 쾌적한 야외 식당 및 판매 구조를 만들어 수산물 소비를 촉진하고 각종 수산물 행사를 진행한다면 얼마든지 활로를 찾을 수 있다. 강남에 고급 갈비집이 그 금싸라기 땅에 왜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 수요자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안다면 그 터의 효능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그라운드 디자이너에게 요청해 그림을 그린다면 수협이 동작구청에 제공하는 체육시설 비용만으로도 일단 시작을 할 수있다. 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잠시 공익적 기능을 갖는 사업을 한다면 돈을 많이 들여 시설물을 지을 필요도 없다. 어차피 4년 후 시설물을 헐어 여기에 뭔가를 지을거라면 그때보다 지금 시작하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 아닌가. 그 때는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자금을 마련해 지을 건가”

그는 “코로나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개별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1만5천평은 엄청 난 활용가치가 있다”며 “내가 그 땅을 갖고 있다면 난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동작구가 확실한 약속 이행을 할 수 있도록 안전보장장치를 잘 만드는 방법 이외 다른 방법이 있겠느냐”고 했다. 끝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고 묻자 “수협은 누가 뭐래도 어민의 생산활동을 지원하는 게 존재이유”라며 “언제나 그 기본을 망각해선 안 된다”고 했다. 수협사에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할 엄청난 일을 한 사람을 쉽게 잊어먹고 냉대하는 수협의 미래 가치가 과연 얼마인지 궁금하다. <문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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